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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국제 흙의 해’ 특별인터뷰 - 정영상 강원대 교수
흙살림 조회수 736회 15-02-02 14:06

본문

 
 
2015년은 UN이 정한 ‘국제 흙의 해’이다. UN은 ‘건강한 삶을 위한 건강한 토양’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우리의 토양을 보호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벌일 계획이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 지구의 토양은 도시의 팽창, 삼림파괴, 지속가능하지 않은 토양의 사용과 관리문제, 오염, 과도방목과 기후변화로 위험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이에 흙살림은 건강한 흙을 알리는데 앞장서고자 흙에 관한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흙을 살리는 미생물 등 흙과 관련된 다양한 소식을 전달할 것이다. 그 첫 번째 시간은 정영상 강원대 교수와의 인터뷰다. 정영상 교수는 세계토양학회 토양 및 물 보전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하다.
 
 
Q. UN이 2015년을 국제 흙의 해(international year of soil)로 선정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정영상 교수 : 흙의 해 선정은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에서 정한 것이다. FAO는 이미 토양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고, 흙이 식량 생산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흙의 해 대상은 가족농이다. 선진국에서는 관행농에 대한 대안으로 다양한 농업적 변화를 겪고 있다. UN은 5년 전 이라크에서 소농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저개발국의 농업생산성을 안정시키려면 토양을 잘 관리해야 하고, 미래농업 생산의 핵심 또한 흙이라는 것이다. FAO본부는 이탈리아에 있지만 토양 관련부분은 태국에서 많이 다루어왔다. FAO 토양부분 지사가 태국에 있다. 우리가 지난해 제주도에서 개최했던 세계토양학회도 이미 13년 전 태국에서 개최됐다. 태국은 아시아 토양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콘퍼런스도 유치해 왔다. 일본에서도 이미 21년 전 세계토양학회를 개최했다. 토양 분야에서 힘의 결집이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흙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다.
 
Q. 한국이 예전부터 흙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고 볼 수 있나
정영상 교수 : 우리나라는 흙 속의 역사가 깊게 담겨 있다. 일본은 목재 집에 목기, 나무젓가락을 쓴다. 중국도 왕족이나 귀족이 자기를 사용했지만 서민들은 나무 밥그릇을 썼다. 하지만 한국은 옹기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집도 온돌을 이용했는데 구들장 틈을 모두 진흙으로 메꾸었다. 이는 우리나라 진흙이 수축과 팽창이 크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수축과 팽창이 크다면 구들에 틈이 생기고 쉽게 무너져 내릴 것이다. 다만 카오리나이트와 일라이트가 많은 점토로 양분 흡수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Q. 농업에 있어 흙의 역사는 어떠한가
정영상 교수 : 청주 청원의 소로리 고대벼는 13,500년전에 우리가 벼를 재배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토양 단면을 처음 봤을 때 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중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벼는 11,500년 전 것이다. 춘천의 소양댐 가는 길 천전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호형토기는 우리가 사질논에서도 벼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로서는 정말 대단한 기술이다. 우리 농업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흙의 역사를 꼭 이야기한다. 흙은 바로 뿌리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흙을 아끼고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일반 토양학 책에서 흙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토양이라고 쓰는데 정말 안타깝다. 흙이라는 단어가 학문적으로 정립이 안됐기 때문이다. 작년 토양연구집에 흙을 과학용으로 채택시켰다. 토양은 토양생성작용을 받은 층이지만 흙은 더 많은 개념을 내포한다. 토양생성작용을 받지않은 가루도 흙이기 때문이다.
 
Q. 흙이라는 단어 자체에도 애정이 많은듯하다. 흙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영상 교수 : 난 40년 넘게 토양학을 연구, 공부했다. 작년 세계토양학회에서 발표한 게 하나 있다. 이 시대 어린이들은 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흙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시대별로 변화상도 알아보고 싶었다. 읽기 교과서에 흙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나왔는지를 조사해봤다.
년대
토양
1950
18
0
1972
50
0
1996
37
0
2012
13
2
 
1970년대는 새마을 운동과 농촌개발 등으로 인해 흙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다. 2012년 토양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은 환경오염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였다. 그렇다면 초등학교에서는 흙에 대해서 무엇을 배울까. 교과서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두껍아 흙집 지어라” 라는 동요가 있다. 집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치기 영차’라는 시를 보면 놀라운 부분이 있다.
 
깜장 흙 속의 푸른 새싹들이 흙덩이를 떠밀고 나오면서 히 / 영치기 영차 히
 
시인의 눈엔 흙이 까만색이었다. 아이들도 그렇게 받아들인다. 우리가 커가면서 과학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흙은 밤색, 갈색이 된다. 그런데 실제로 흙살림이란 바로 이런 깜장 흙을 만드는데 있다. 깜장 흙이 될 때 비로소 토양은 생명력을 복원하는 것이다.
4학년 과학교과서에서는 ‘소중한 자원 흙’이라고 배운다. 화단의 흙과 운동장의 흙을 비교하고 화단의 흙이 까만색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물에 의한 지표변화, 오염 유실로부터 흙을 지키자는 것도 배운다.
6학년 과학책에선 토양 산도를 측정해보는 실험을 한다. 이때 토양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중학교 과학책에서는 조선의 온실 온돌시스템이 나온다. 또 환경과 환경보전이라는 부분에서 토양 단면을 배우고 생태계 유지라는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환경과 녹색성장이라는 주제로 농업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로 환경의 공익적 기능이 있음을 배운다.
 
Q. 깜장 흙을 만드는 것이 흙살림의 길이라고 했다. 그 방법으론 무엇이 있을까.
정영상 교수 : 먼저 생태계에 알맞은 퇴비를 써야 한다. 아무 유기물이나 무조건 집어넣은다고 깜장 흙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토양의 분해능력, 즉 생태계의 소화 기능에 맞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탈이 난다. 그리고 급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차근차근 유기물 함량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깜장 흙을 만들겠다고 가축분 퇴비를 무더기로 집어넣으면 질퍽질퍽한 땅이 되지 않겠는가. 화학적 부분과 함께 물리적인 성분까지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로 자연의 순환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수확물을 통해 반출한 양만큼 양분이 보충되어야 한다. 유기물 퇴비만으로는 부족하다. 양분 밸런스가 생체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Q. 마지막으로 흙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정영상 교수 : 미래의 교육은 흙을 만지면서 놀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양에 관한 정보는 교사들이 또 교과서 저자들과 교육 정책가들, 담당 공무원들이 더 잘 알아야 한다. 흙을 더 많이 공부하고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좋은 흙, 건강한 흙을 만드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이 흙을 파고 놀고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흙이 사질에 산성이라 척박하고 병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우리 땅이 신선하고 젊은 땅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잘 가꾸어서 물러줘야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마지막으로 법정스님의 ‘흙 가까이’라는 시를 소개해주고 싶다.
 
 
 
 
 
                   흙 가까이
 
 
서산에 해 기울어 산그늘이 내릴 무렵
훨훨 벗어부치고 맨발로 채소밭에 들어가
김 매는 일이 요즘 오드막의 해질녘 일과이다
맨발로 밭흙을 밟는 그 감촉을 무엇에 비기랴
흙을 가까이 하는 것은
살아있는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흙을 가까이 하라
흙에서 생명의 싹이 움튼다
흙을 가까이 하라
나약하고 관념적인 도시의 사막에서 벗어날 수 있다.
흙을 가까이 해야
삶의 뿌리를 든든한 대지에 내릴 수 있다.
 
우리에게 대지는 영원한 모성
흙에서 음식믈을 길러 내고
그 위에다 집을 짓는다
그 위를 직립 보행하면서 살다가
마침내는 그 흙에 누워 삭아지고 마는 것이
우리들 삶의 방식이다.
 
흙은 우리들 생명의 젖줄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씨앗을 뿌리면 움이 트고
잎과 가지가 펼쳐져 거기 꽃과 열매가 맺힌다.
생명의 발아 현상을 통해
불가사적인 영역에도 눈을 뜨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흙을 가까이 하면
흙의 덕을 배워 순박하고 겸허해지며
믿고 기다릴 줄을 안다
흙에는 거짓이 없고
추월과 무질서도 없다
 
시멘트와 철근과 아스팔트에서는
생명이 움틀 수 없다.
비가 내리는 자연의 소리마저
도시는 거부한다.
그러나 흙은 비를 그 소리를 받아들인다
흙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인간의 마음은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정결해지고 평온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구두와 양말을 벗어버리고
일구어 놓은 밭흙을 맨발로 접촉해 보라
그리고 흙냄새를 맡아 보라
그것은 순수한 생의 기쁨이 될 것이다.